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릿 콜/선수 경력 (문단 편집) === [[뉴욕 양키스|양키스]]의 가슴을 할퀴다 ===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렌지 카운티]]에서 오렌지 루터런 고교[* 사립학교. 야구 명문 학교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를 나온 콜은 고교 때 특이한 딜리버리로 94~98mph의 싱킹 무브먼트를 갖춘 패스트볼을 던지고 매우 준수한 체인지업을 갖춰서 2008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정상급 우완으로 평가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콜은 이미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끼고 있었고, 스터프는 정상급이지만 딜리버리 교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게다가 성격도 제멋대로여서 소위 말하는 언더독 스피릿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기에 많은 팀들이 그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당초 저평가받더라도 전체 15순위 전후로 지명받을 거라던 예상은 속절없이 빗나갔고, 그를 지명한 팀은 1라운드 28순위 픽을 갖고 있던 [[뉴욕 양키스]]였다. 양키스는 콜이 오래 전부터 팬이었으며[* 양키스 경기에서 관람사진이 찍힌 적도 있으며 꼬맹이 시절 [[2001 월드 시리즈]]를 직관했다고 한다.] [[필 휴즈]](같은 캘리포니아 출신)가 드래프트되기 전 피칭을 즐겨봤을 정도라고 하니 돈을 좀 쓰긴 해야겠지만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blog.nj.com/large_gerrit-cole.jpg]] 드래프트 이후 발굴되어 양키 팬들을 설레게 했던 [[2001년 월드 시리즈]] 당시의 어린 콜의 사진.[* 그리고 이후 양키스가 아니라 파이리츠, 애스트로스에서 성공을 거둔 콜은 이 싸인판을 양키스 입단식에 가져왔다.] 허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콜은 양키스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렸는데, 협상을 미루더니, 데드라인에서 400만불쯤 제시하면 외치지 싶던 양키스의 기대를 그야말로 '''무참히''' 짓밟으며 협상이 결렬되었다. 설령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받는다 해도 사인할 계획이 없었을 정도로 협상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중론.[* 이 정도면 선수 본인의 대학 진학 의지가 막강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실제로 콜이 간 학교가 야구에서 어느 정도 명문으로 통하는 데다가 학업적으로는 전미 최정상 중 하나인 UCLA이니...] 일각에서는 양키스가 웬만한 전체 1순위 계약금에 준하는 600만불까지 쓸 각오를 했고, 진전이 없자 다급해져서 마감 몇 분 남기고 600만불에 달하는 거금을 정말로 제시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계약에는 실패했고, 콜은 [[캘리포니아 대학교/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